조선일보
학생들에게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수업방식을 짜주는 교육컨설팅이 확산 중이다. 아이의 성격과 체질, 성적 수준 등 특성에 맞는 ‘1대1 개별 맞춤서비스’다. 에듀플래너(Eduplanner) 또는 학습매니저란 이름도 생겨났다. 올해 초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에서 문을 연 학습매니지먼트 회사인 에듀플렉스도 그중의 하나다. 그러나 고승재 대표와 이병훈 교육개발본부장은 사교육 중심지에서 영업(?)하면서도 “공부를 잘하려면 학원부터 그만두라”고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서울 과학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이른바 ‘공부 고수’다. 공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는 두 사람은 창업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행복한 공부를 만든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전파하고 싶었다.”
Q. 공부를 잘하려면 학원부터 그만두라고 한 이유는 뭔가?
A.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안 오른다며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다. 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냐고 한다. 오히려 학원을 그렇게 많이 다니는데 어떻게 성적이 오를 수 있냐고 얘기하고 싶다.
대다수 학부모, 학생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쓸려 학원이나 과외를 하나씩 늘린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개념과 원리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요약된 정보만 반복해서 듣는 공부만 하게 돼 응용력과 문제해결력이 떨어진다. 똑같은 유형의 어려운 문제는 기계적으로 풀면서, 쉽지만 기본 유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풀 엄두도 못 낸다. 한마디로 자기 지식이 없는 것이다. 학원을 많이 다니면 자기만의 공부시간이 없고 심신이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러다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을 더 늘리려고 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Q. 우등생도 학원을 많이 다닌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A. 착각을 해선 안 된다. 상위권 학생들은 학원에서 수업만 받고 집에 가 숙제하기 급급한 채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 잠을 이기며 공부한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2~3배수의 시간을 들여 자기 실력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도 보통 학생들은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착각한다.
우등생들이 학원 수강을 하는 것은 자신을 좀더 채찍질하고 3년에 할 것을 효율적으로 1년에 끝내는 식으로 공부에 가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보통 학생들처럼 학원선생님이 뭔가 해주겠지, 시키는 것만 하면 성적이 오르겠지 하며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Q. 대치동 학부모에게 그 말이 먹히나?
A. ‘불안하다’거나 ‘안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 ‘내가 팀을 구성해서 빠질 수 없다’ 등등의 반응이 아직 많다. 하지만 학습매니저와 학부모의 믿음이 형성되면 과감히 불필요한 학원을 중지한다.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외부와 담쌓고 혼자서 책과 씨름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며 질문이나 도움마저도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단계를 의미한다.
Q.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완전한 자기 지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대개의 학생들은 개념 이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도 그때뿐이다. 돌아서면 문제풀기에 급급하고 개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어려우면 그냥 외워버린다. 문제를 많이 풀면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공부한다. 개념을 터득하려면 어떤 단원의 내용을 공부할 때 앞단원의 내용이 떠올라야 한다. 요약서나 문제집에만 의존하려 하지 말고 시간이 좀 들더라도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는 교재를 잡고 차근차근 이해하면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봐야 한다. 개념을 이해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책을 아무 곳이나 펼쳐서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는 것이 좋다.
Q. 상위권 학생의 공부비법은 따로 있는가?
A. 분명 따로 있다. 하지만 희한한 것이 아니다. 온갖 공부비법이 시중에 나와 있다. 하위권 학생은 그러나 읽을 때뿐이다. 실천을 못한다. 능력이 다른 게 아니다.
Q. 우등생이 되려면 학습동기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A.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우등생의 시작점이다. 마음만 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스스로 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선생님이 혼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등생들은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잘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학습 목표를 세워 그날그날 실천한다. 실제 일주일 단위로 공부해야 할 내용과 분량을 수첩에 적어 날마다 계획대로 실천했다. 자기의지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자기 관리와 자기 절제다.
Q. 예습과 복습은 왜 중요한가?
A. 시험 때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해도 성적이 안 오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반짝 벼락치기를 해도 성적은 잘 나오는 학생이 있다.
두 학생의 차가 바로 예습·복습의 유무다. 수업 전에 수업 내용을 한번 훑음으로써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있고 복습을 통해 이해력을 키울 수 있다. 예습은 수업 직전에 복습은 직후에 하는 게 좋다. 가령 수업 후 곧바로 복습을 하면 5~10분 만에 정리할 수 있지만 자기 전에 하면 30분 이상이 걸린다.
Q. 정신관리와 환경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정신관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장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 설정, 진로에 대한 고민,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태도 등을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대화하면 좋다. 부모님과 대화가 많은 학생일수록 성적이 좋다는 통계도 있다. 친구관계나 이성문제도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좋다.
환경관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공부환경 조성인데, 자신만의 장소를 먼저 찾아야 한다. 집도 좋고 독서실이나 학교 자습실도 좋다.
다만 6개월에 한번은 같은 장소라도 변화를 주는 것이 좋다. 너무 그 환경에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이다. 집의 공부방이라면 배치나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Q. 부모가 학습 매니저로서 할 역할은 무엇인가?
A. 부모는 주변부의 가드레일 역할을 해야지, 중심적인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려고 애를 쓰면 아이는 오히려 일탈심리를 느끼게 된다. 전폭적인 믿음과 기다림,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주변의 가드레일 역할로 편안함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면 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춘기적인 고민을 들어주면서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설득해야 한다.
Q. 선행학습이 일반화돼 있다. 어느 정도의 선행학습이 바람직한가?
A. 80~90점대 학생이라면 선행학습을 해도 좋다. 6개월치 진도 정도면 충분하다. 최상위는 1년 정도도 무방하다. 60~70점대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하되, 보충학습을 병행해야 한다. 그 비율은 상황에 맞춰 결정하면 된다. 40~50점대라면 일단 선행학습은 잠시 미뤄두는 게 좋다.
조선일보, 200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