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동아일보] 우리학교 공부스타/광주 살레시오고 1학년 박규현 군
“운동선수 꿈은 접었지만, 이젠 연습벌레 대신 공부벌레”
광주 살레시오고 1학년 박규현 군은 ‘삼색(色) 노트정리 비법’으로 반 년만에 전교 309등이던 성적을 147등까지 끌어올렸다.
《광주 살레시오고 1학년 박규현 군(16). 그는 강서브로 유명한 미국의 테니스 스타 앤디 로딕 같은 선수를 꿈꿨다. 7세 때 테니스를 처음 접한 박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연습벌레였다. 오후 7시까지 테니스부 단체연습을 하고도 체육관에 남아서 2시간씩 근력 운동을 했다. 하지만 고교 진학을 앞둔 지난겨울,그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팔꿈치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더는 운동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단순 근육통인 줄 알고 1년 정도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오른쪽 팔꿈치에서 떨어진 2cm 크기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어요. 운동에만 매달렸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어요.”》
○ 40명 중 39등… 6개월 만에 19등으로 도약
오랜 꿈을 잃은 후유증은 컸다. 좌절감과 공허감이 박 군을 옥죄었다. 그는 테니스 라켓 대신 컴퓨터 마우스를 잡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컴퓨터 게임과 영화에 빠져 살았다. 중3 겨울방학 내내 그랬다.
“게임을 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래야만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죠. 그땐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1이 되고 나서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가 많았다. 고1 1학기 중간고사 평균은 46점. 반 40명 중 39등이었다
그런 박 군이 달라졌다. 고1 1학기 기말고사에서 반 26등으로 성적이 오르더니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19등이됐다. 전교 등수도 1학기 중간고사 309등에서 2학기 중간고사 때 147등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불과 6개월 만에 꼴찌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 구체적 목표 설정…각서 쓰고 열공!
방황하던 시절 박 군에게 힘이 되어준 건 부모님이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그를 질책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함께 대안을 찾자고 제안했다.
“부모님께서는 운동을 못하게 됐으니 공부를 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셨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때 이후로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답답한 마음뿐이었죠.”(박 군)
운동을 오래했으니 체육교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성적이 최하위권인 자신이 교사가 되는 미래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박 군은 수업을 듣고 싶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됐다. 학원을 가기에는 또래 친구에 비해 기초가 부족했다. 어떻게 공부할까 고민하던 중 올해 5월 공부방법 자체를 지도해주는 한 교육 업체를 찾게 됐다.
진로 상담을 받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체육교육과를 가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봤다. 또한 10여 개 대학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시전형을 살펴봤다. 체육교육과 입시에는 국어, 사회, 영어 과목 성적만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군은 이에 맞춰 학습계획을 짰다.
“막연히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자 친구들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제 와서 공부한다고 성적이 얼마냐 오르겠느냐’고 한 것. 오기가 생겼다. 박 군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각서’를 썼다. 목표 등수와 달성기간 및 행동수칙을 상세히 적은 것이다. ‘2학기 중간고사까지 반에서 20등 안에 든다’ ‘주말에 영화를 보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겠다’ 등의 내용을 적어 책상 앞에 붙였다. 한 부를 복사해 부모님께 드렸다.
○ 삼색(色) 정리노트…중학 교과서부터 다시 시작
일단 학교 정규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박 군은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세 권의 정리노트를 만들었다. △용어정리 △교과서정리 △수업일지 노트가 바로 그것이다.
용어정리 노트에는 국어, 사회 교과서에 나온 주요 개념과 용어를 정리했다. 예를 들어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집적지향공업’은 ‘집적’, ‘지향’ 같은 뜻을 하나하나 전자사전에서 찾아 적었다.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은유법, 의인법 같은 기본적인 용어의 뜻도 정리했다. 사전에 나온 예문도 함께 적었다. 매일 학교 진도에 맞춰 과목당 30∼40개씩 정리했다.
교과서 정리노트에는 중학 교과서의 핵심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고등학교 과정은 결국 중학 과정의 심화내용이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중1∼3 교과서를 읽으며 단원별 학습목표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했다. 한국지리를 공부할 때는 중학 교과서에 나온 주요 지도를 직접 옮겨 그렸다. 각 지도에 설명도 덧붙였다. 공업입지 지도를 그릴 때는 ‘대구가 섬유산업으로 유명한 이유가 뭘까?’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며 이유를 꼼꼼히 적었다. 쉬는 시간에는 ‘수업일지’ 노트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수업시
간 필기와는 별도로 공부한 내용 중 잊지 말아야 할 부분과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적었다. 이렇게 정리한 수업일지는 학교 시험을 대비할 때 활용했다.
김 군은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의고사 공부도 할 생각이에요. 테니스 선수로 못다 이룬 꿈을 체육교사가 되서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랍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동아일보, 2010.12.14
원문: http://news.donga.com/3/all/20101213/332568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