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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선행학습이 열등생 만든다?
개념 이해보단 암기주력때 공부 흥미 잃어 "학교보다 학원" …잘못된 공교육도 주요인
"엄마가 선행학습을 심하게 시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삼수하고 있진 않을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중2 수학을 선행학습한 한 남학생의 푸념 어린 고백이다. 요즘엔 초등학교 4, 5학년 때 '수학의 정석'을 선행학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개념 이해도 없이 어려운 공식만 외우다 보면 수학에 넌덜머리를 내기 쉽다. 엄마들은 중1 학생에게 수학의 정석을 시켰는데 중간고사 점수가 80점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어이없어 하지만 아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교생이 되면 수학의 정석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선행학습 위주의 학원 교육은 1명의 스타와 9명의 희생양을 양산하는 사상 최악의 교육시스템이다.
'학습 매니지먼트, 공부 잘하고 싶으면 학원부터 그만둬라'(한스미디어ㆍ9800원)는 자율학습을 강조하는 책이다. 학생의 자립심을 높여주고 적절한 동기 부여를 통해 성취감을 획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학습매니저 역할을 학부모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공부는 상위권 학생들의 비법을 안다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자아개념이 확립되면 자아주도적 학습이 가능하다. 과학고등학교에서 미적분 시험에서 낙제점수를 받은 한 학생의 예를 들어보자. 중학교 때 우수한 학생이던 남자아이는 고교 진학 후 상위권에 들지 못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물리경시대회에 입상해 이를 만회하려고 대학교재를 갖다 놓고 물리학만 공부한다. 덕분에 고교 수학은 밀쳐놓게 됐고 진도를 놓쳐버린다. 공부는 선행학습보다 잘못된 길로 엇나가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교육 부실화는 "학교는 잠자고 친구 사귀는 곳"이란 한마디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학부모도 "학원 다니느라 피곤한데 학교 가선 놀아아죠"라고 반응한다. 요즘 학교에 가서 수업 열심히 들으면 '왕따' 당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원 강좌를 3~7개 수강하면서 학원 보충용 과외를 받기도 한다. 학원에선 학생들을 책상에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숙제를 많이 내준다. 학생들은 배운 것을 자기화하기에 앞서 숙제 제출에 급급해진다. 학원은 학생보다 돈을 지불하는 학부모의 만족에 더 신경 쓴다.
'학습…'의 저자 이병훈 씨는 교육 특구 대치동 한복판에 '학습 매니지먼트'회사를 차리고 '가르치지 않는 교육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공부하게 도와주겠다는 의미다. 저자의 에듀플렉스는 예상 외로 많은 고객을(?) 유치해 학습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헤럴드경제, 200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