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조선일보] 과욕도 무관심도 '의욕 잃게 만드는 이유'
무기력한 아이 어떻게 할까?
달성 가능한 목표 정하게 하고 구체적 학습법 제시해야
아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적당한 멘토 찾아주는 것도 효과
고1 김중흔(가명)군은 학교에서는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집에서는 잘 생각만 하며 하루를 대충 보낸다. 친구들은 촌각을 다투며 공부하지만, 김군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공부를 하는 것도 노는 것도 전혀 관심이 없다. 의미 없고 무료하기만 하다. 이런 김군을 보는 엄마 이상순(41·서울 도봉구)씨의 마음은 답답함이 크다. 어르고 달래봐도 잠시 달라지는 척할 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모든 일에 흥미가 없고 의욕도 없는 아이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매사 의욕이 없게 행동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생활이나 교우 관계에서도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뭘까.
◆의욕이 없는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소위 불량 청소년으로 불리는 중3 딸을 둔 주부 이민영(40·서울시 영등포구)씨는 시간을 낭비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교 내신은 물론이고 선행까지 많이 준비했다는 옆집 아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딸과 비교돼 속이 상한다. 딸에게 공부하라는 얘기를 꺼내면 하기 싫다고 화를 내고, 눈물을 터트리는 바람에 야속하지만, 더 엇나갈 것이 두려워 그저 속만 끓일 뿐이다. 이씨는 "이제는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한 요즘에 저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주부 김미영(41·서울시 송파구)씨는 공부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공부 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고1 아들 때문에 걱정이다. 평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자거나 게임을 하느라 공부는 뒷전인가 하면, 주말에는 피곤하다고 좀처럼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전 과목 학원에 보냈으나 책가방만 들고 왔다갔다할 뿐 이전과 별다른 차이도 없다. 무슨 일이든 닥쳤을 때 하고 지나치게 느긋한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김씨는 "아이에게 공부 잘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은 하지만, 본인이 왜 공부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목표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런 나태한 상태로 2년 후 수험생 생활을 어떻게 보낼지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기력한 아이들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최근에 더 많아진 것은 학습과 관련된 부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다양한 원인에서 오는 무기력이 있었으나 요즘은 학습 문제에서 연관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당 학생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창동 에듀플렉스 황미인 원장은 "부모가 지나치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학습 환경을 구성하지 않고 장시간 방치했을 때 나타나기 쉽다"고 말했다. 강동소아정신과의원 김영화 원장은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은연중에 아이에게 전달돼 아이가 부담을 느껴 의욕이 꺾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무기력증을 방치하면 우울증 등 다른 증상을 동반해 심각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전문가들은 의욕이 없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자신감을 회복해야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임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학습 면에서도 자신감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이때 부모는 방법을 안 가르쳐주면서 무조건 공부하라고 윽박지르기보단, 아이가 스스로 제대로 된 학습 습관을 갖출 때까지 구체적인 학습법을 제시해 따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 학습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내용이 어려워서는 안 되며 쉽게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황미인 원장은 "노트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며, 문제집은 어디부터 몇 페이지까지 풀어야 한다는 식으로 적은 학습량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반복 학습하게 한다. 부모는 아이가 달성했는지만 확인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공부한 내용을 말로 설명해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학생의 마음을 지지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의욕이 없는 것은 마음의 병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아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우선 대화를 유도해 아이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때 대화는 아이를 감시하거나 채근하려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해야 한다. 부모가 직접 하기 힘들면 적당한 멘토를 찾아 주는 것도 좋다. 김영화 원장은 "학습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일 경우, 공부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인지하게 하고 운동이나 예체능 활동 같은 취미생활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방법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조선일보, 2011.10.17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0/16/20111016005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