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윤 (매니저) / 상계점
얌전해 보이는 눈빛 뒤로 깊은 무엇인가가 자리잡아있는 첫 인상이 인상적이었던 아이.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1월 이었습니다. 굉장히 매서운 눈보라도 따뜻한 지점 안에서 바라보면 무척 평온해 보일 수 있는 그런 느낌. 제가 아이에게 받은 첫 인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초기상담 시 적어주신 담당매니저 전달사항에는 아이가 공부는 잘 하지만 의지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 부모님들은 노력하시지만 아이가 점차 사춘기인지 어긋나게 행동하려 한다라는 우려, 더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 등이 적혀있었습니다. 아이가 적은 매니저 전달사항에는 공부를 잘 하기는 하지만 별로 더 잘하고 싶지는 않아서인지 목표점수에 적은 ‘몰라’ 라는 휘갈겨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관심 있는 과목도 가정과 같은 교과목이었으며 장래희망도 ‘유치원 선생’이라고 적었던 것, 그리고 자신이 부모님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10이라고 표시한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너무 예쁜 나의 아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10만큼 주시고 있으신’ 어머님과의 대면상담 첫 날, 어머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지금 성적에 만족하고 있으며 별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푸념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고등학교 교사셨는데 어머님과의 나이차이가 꽤 나는 편이라 아이에게 굉장히 엄하시고, 어머님께서는 교육관련직에 계시기에 교육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아이에게 쏟고 있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의 일상을 통제하고 계셨고 아이에 비해 좀 더 똑똑한 1년 터울의 남동생에 대해서 아이가 위기의식과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아이와 첫 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ISFP성향이며 굉장히 조용하고 처음 만난 매니저에게 단답형 대답만 했던 아이. 매니저 전달사항에 쓴 내용들에 대해서도 그냥 목표성적을 몰라서 ‘몰라’ 라고 썼다는 아이. 어떤 이유로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니 그냥 주변에서 들은 것이 그것이어서 익숙해서 썼다는 아이, 아이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고 어떤 과목이 어려운지 물어보니 특별히 좋아하는 과목은 없으나 수학이 싫다고 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어본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10점을 넘어설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내재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성향 상 그것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냥 귀찮고 부딪히기 싫어서 담아놓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해도 최상위권은 되기 어렵다고 한계를 긋고 있었으며, 지금도 별로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어보지 못하고 있고 계속 공부를 더 해야 다는 잔소리만 듣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듀플렉스 역시 부모님에게 이끌려서 다니고 있던 학원을 갑자기 부모님께서 에듀플렉스에 등록을 하신 후 오게 되었다며 또 다른 학원의 하나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었으며 선생님을 또 다른 부모님 같은 어려운 어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VLT보고서의 결과 역시 아이가 목표도 없고, 부모님에게 끌려서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는, 별다른 학습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에서도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꽤 깊은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와의 만남 후 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냥 에듀플렉스에 온 또 다른 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아이가 부모님에 의해 굉장히 갇혀있다는 생각, 그로 인해 다른 어른들에 대해서도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라는 생각, 아이가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 붓고 있는 공부가 굉장히 아이를 힘들게 하고 지루하게 하고 있으며, 점점 부모님과의 사이에 한 겹 한 겹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로서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생각은 이 아이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내가 함께 들어가 손을 잡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게 하고 싶다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진흙 속에 있던, 꽃밭에 있던, 콘크리트 위에 있던, 흙 길에 있던 어떤 곳에서라도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기 위해 아이가 있는 곳에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곰곰이 지켜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선뜻 손을 내밀었다가는 또 다른 어른들 중 하나로 매니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매니저가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준 '음료', 아이는 나중에 이 과수원의 맛을 공부로 너무 힘들 때 '사막의 단비'와 같았던 맛이었다고 했다.>
그 첫 걸음은 다른 어른들과는 만들지 못했던 라포를 아이와 형성하려고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없더라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아픈 것도 표현하지 않고 끙끙대다가 결국 하원 후 밤새 앓고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오는 아이였기에 표현이 서투르고 어려운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른’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말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 그렇기 때문에 매일 아이가 오기 전 아이의 등원을 긴장감속에 기다리고 아이를 반겨주었습니다. 오늘의 컨디션은 괜찮은 건가? 어디 아픈데 안 아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집에서 또 어머님이나 아버님과 마찰이 있었나? 공부하는 게 오늘 힘들지는 않을까? 하기 싫은데 거절하기 미안해서 그냥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등…… 아이가 주 5일 등원하면서 전 매일 등원하는 그 순간부터 하원 하는 그 순간까지 매 순간의 아이의 눈빛을 살펴보며 매니지먼트를 진행하였습니다.